[ESSAY]사라진 시간을 찾아서 / 박한솔

2020-06-02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 / 박한솔


 2016년 초여름. 나는 대학원 연구실의 막내였다. 첫 프로젝트의 첫 답사 날이었다. 굉장히 설렜다.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나는 목적지도 알지 못했다. 아니, 분명 들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설렘에 취해,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쉴 새 없이 떠들 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철원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철원에 간다. 5년이란 시간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연고가 없는 30대 중에 철원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이 나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인들은 매번 똑같은 곳에 가서 뭘 볼 것이 있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가 매번 다른 철원을 간다는 것을.


 철원과 같은 DMZ 접경지역을 방문한 사람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 또한 일명 '안보 관광지'를 먼저 찾았다. 노동당사와 제2땅굴, 백마고지 전적비 등 굉장히 단시간에 여러 곳을 갔고, 많은 설명을 들었다. 지루한 단체 관광 혹은 교육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여자이자(남자 형제도 없다) 역사와 담을 쌓은 이과, 공대를 졸업한 나로서 한국전쟁과 군 문화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검문소를 지나 말로만 듣던 DMZ와 북한을 바라보고, 땅굴을 걸었다. 특히 땅굴은 안전모를 쓰고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가야 하는데, 동료들과 서로의 모습을 놀리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눈치챘겠지만, 안보관광의 기획자가 기대한 '전쟁과 분단의 아픔', '통일의 염원' 혹은 '적과 전쟁의 인식'은 나에게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전쟁과 분단에 대한 감정적 동요는 생각지 못한 순간에 일어났다. 더는 안보 관광지가 놀랍지 않을 즘 전쟁 이전의 철원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연구원으로서 나는 철원의 옛 모습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들은 어렸을 적인 1930-40년대의 철원을 기억하며 환하게 웃었다. 마치 그 시절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1950년에 다다르자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군인이셨던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경험한 전쟁을 생생히 기억하였다. 고지를 점령하던 순간을 말하며, 할아버지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눈은 금방이고 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전쟁터 한가운데 있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내 마음에 휘몰아쳤다. 할어버지의 기억이 나를 한국전쟁의 철원 속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안보관광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할아버지와의 짧았던 대화가 해낸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철원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일제강점기 철원은 빛났다길은 가로등 빛으로 가득 찼고, 철원역은 서울(경성)역 다음으로 큰 역이었다. 자연스럽게 철원역 앞으로 번화가가 생겨났는데, 수많은 음식점과 판매점, 백화점까지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열차로 알려진 금강산전기철도도 철원역에서 출발하였다. 금강산을 가기 위하여 당시 모던걸, 모던보이는 모두 철원으로 모였을 것이다. 1920년 최고의 스타였던 최승희는 그 거리에 있었던 철원극장에서 꼭 순회공연을 열었다니 철원의 위상을 알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흔적이 철원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노동당사 앞 도로는 민간인통제선을 넘어 길게 이어진다. 바로 이 도로가 구철원의 핫플레이스이다. '금강산로'라는 이름의 이 거리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지만, 또 전쟁으로 인해 그대로 남겨졌다. 길에는 농산물검사소, 얼음창고, 금융조합과 같은 오래된 건물이 있다. 건물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금강산로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주변은 화려한 그 시절 그 거리로 변한다.


 

Ⓒ 철원문화원(2009) / 구철원 상가                                                                                              Ⓒ 박한솔 /  농산물검사소


 한국전쟁이 이후 시간은 멈췄다. 내가 안보관광에 흥미를 잃은 이유 역시 모든 장소의 시간이 멈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을 가든지 “1950년, 한국전쟁 때에 이곳은”으로 시작해서 그렇게 끝이 난다. 70년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의 철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민북마을이다. 민간인통제선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민북마을은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때문에 민북마을은 다른 농촌 마을과 달리 격자형 도로, 똑같은 형태의 집들이 이어진다. 신도시처럼 말이다. 전쟁터를 사람이 사는 터전으로 만드는 과정은 상상치 못할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의 삶과 문화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마을은 유지되었다. 분단의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고 살아온 민북마을은 전쟁 이후 잃어버린 시간이자 철원의 현재이다.


 

Ⓒ 박한솔 / 통일촌, 유곡리                                                                                                      Ⓒ 박한솔 /  유곡리 길


 가장 좋아하는 시간 여행지를 꼽으라면, 단연 소이산이다. 소이산에서는 모든 시간의 철원을 만날 수 있다. 소이산 초입에는 지뢰꽃길이라는 둘레길이 있다. 지뢰 철책을 따라 주민들은 꽃을 심고 직접 지은 시(詩)를 걸었다. 어떤 전문가가 조성한 길보다도 아름답고 신비롭다. 산을 오르는 숲길에서는 철근과 군 시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소이산은 산 전체가 군기지로 사용되었다. 산 아래는 큰 지하벙커가 있다고 하는데, 안전 위험시설이라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철조망과 미군 막사가 보인다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사실 정상은 봉수대이지만, 막사를 통과하여 헬기장으로 가길 추천한다. 그곳에서 보는 경관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에 오를 때마다 한참을 멍하니 있곤 한다. 병풍처럼 솟아있는 고지부터 일제강점기 번영했던 폐허의 금강산로, 민간인통제구역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민북마을까지 한눈에 보인다. 소이산은 일제강점기 이전, 아니 그 옛날에도 같은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소이산에서의 바라봄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기억하는 소이산과 나의 대화이다. 묵묵한 이 친구와의 만남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다가올 시간의 여행이다.


  

                                        Ⓒ 박한솔 / 소이산, 지뢰꽃길                                                                           Ⓒ 박한솔 /  소이산 전망                                             Ⓒ 박한솔 /  소이산 군 흔적 


 나는 철원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마다 다음의 철원이 궁금하다. 또 어떤 시간의 흔적과 기억을 만나게 될까. 철원에는 수많은 시간의 층이 쌓여 있다. 순간은 사라지만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 당신은 어떤 시간을 만나길 기대하는가. 7월, 사라진 시간을 찾아 철원으로 가자.





☮ Writer | 박한솔


박한솔은 건축사이자 (주)올어바웃 대표로 편집장을 맡고 있다. 건축과 도시, 조경의 경계에서 다양한 실험을 즐기며 그 결과를 말과 글, 예술과 같은 다양한 매체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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