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함께 살아야 평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 이가연

2020-03-30


함께 살아야 평화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 이가연


 아빠는 인천 남동공단 앞에 위치한 한 LH 공공임대주택 아파트에 산다. 나 또한 서울로 이사 오기 전까지 그 집에서 아빠와 함께 살았다. 그 집에 살면 늘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 냄새가 났으며, 집 앞 공원에는 항상 혼잣말 하는 노인이 서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동안, 혼잣말하는 노인 말고는 어떤 이웃들이 사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집 문 앞에는 휠체어가 놓여 있었고 어떤 집에서는 부부싸움을 하기라도 하는 듯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그럴 때면 나는 두려운 마음에 112를 눌러 신고를 하거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웃의 얼굴을 마주쳐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인기척은 들렸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빠의 옆집에서 불이 났다. 집에서 자고 있던 아빠는 누군가의 살려달라는 소리에 부부싸움인 줄 알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복도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나고 있었고, 옆집 사람은 복도에 난 불을 끄려고 했지만, 소화기 핀셋이 빠지지 않아 당황해하고 있었다. 다행히 곧이어 소방대원들이 도착해서 불을 끌 수 있었다. 불이 잡힌 뒤 아빠가 옆집 사람에게 어쩌다 불이 났는지 물어봤더니, 부탄가스를 사용하려다 불이 붙었다고 했다. 그동안 가스요금을 내지 못한 탓에 가스가 끊어져서 부탄가스로 밥을 해 먹으려는데, 부탄가스에 그만 불이 붙어버려 무서운 마음에 복도로 던져버렸다고 했다.


 아빠는 옆집 사람이지만, 그 이웃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이웃의 얼굴에는 화상 자국이 이미 크게 있었다고 했다. 과거 그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에 있는 화상의 흔적으로 보아 불에 대한 공포심이 더 컸을 것이라고 아빠는 추측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아빠가 놀란 점은 바로 옆집에 요금을 내지 못해 가스가 끊길 정도로 어려운 사람이 있었음에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웃의 얼굴에 있는 화상 자국도, 이웃의 어려운 사정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청도 대남병원의 폐쇄 정신병동이라는,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집단 시설에서 고립되어 보이지 않게 살아가던 이들은 이번 코로나19로 집단 감염되어 죽어갔다.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바깥세상과의 교류가 끊겨 대부분이 무연고자이다. 그곳에서 몇십 년이 넘게 살아가다가, 코로나19 확진으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15년 만에 첫 외출이라고 좋아했던 환자는 결국 사망하게 되었다. 어디 이뿐일까. 보이지 않게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노인들도 감염병에 취약한 집단적 환경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죽어갔다. 최근 주춤했던 코로나19는 요양원에서의 집단감염으로 연이어 발생하게 되면서 노인들의 감염과 죽음이 숫자로 남아 속보로 알려지고 있다.


 아빠가 거주하는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19로 집단 시설에 있다가 사망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역시 노인과 장애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어느 곳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혐오 대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무책임한 말을 던지고는 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제적 빈곤과 의료적 취약성에 노출된 노인들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한다. 대표적인 예로 “늙으면 죽어야지.”와 같은 표현들이다. 나 또한 그러한 표현을 무의식중에 사용하고는 했었다. 심지어 TV에 자주 출연하는 유명한 정치인들마저 나이가 들면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이들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비웃고 ‘나이가 들면 곱게 살아야 한다’는 투의 표현으로 서로를 비아냥거리기도 일쑤였다. 이들의 말을 듣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정말 노인이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무식해진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장애인 언론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가 은연중 받아들여 왔던 노인혐오의 말들이, 엄격하게 반대하는 ‘장애인 혐오’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타인의 물리적, 사회적, 의료적 돌봄이 필요하다. 기자가 되어 장애 관련 소식을 취재하다 보면, 흔히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이유로 타인에게 민폐나 귀찮음을 주는 존재로 여겨지는 일상적 혐오를 번번이 겪는다. 적지 않은 장애인의 부모나 공무원들이 돌봄을 요청하는 장애인 당사자를 두고 종종 “지역사회에서 살기 힘들면 차라리 시설로 가는 게 낫다”는 말을 던지곤 했고, 그 말들이 나를 늘 분노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장애 혐오에 대해서는 이토록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과거의 노인 혐오에 대해서는 웃어넘기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혐오의 기제도 장애 혐오와 마찬가지의 방식이다. 노인을 두고 단지 ‘살 만큼 살았다’고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신체가 노화됨에 따라 타인의 돌봄을 요구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이유로 이들 삶의 역사를 존중하지 않은 채 “늙으면 차라리 요양원에 가라”는 말을 우리 사회가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것은 장애인을 향한 혐오와 다를 바 없다.


ⓒ bruno martins, splash


 이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을 폄훼하고, 이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을 무책임하게 표현하고는 한다. 나아가, 이들이 내 삶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고 격리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즉, 생산성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혐오하고 동시에 내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차라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라’고 이들을 떠밀어버림으로써 아픈 자들의 고통과 희생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탈락시키는 혐오의 발언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익숙해져 있다.


 노인을 향해 “늙으면 요양원에 가야지”라고 핀잔을 주거나, 장애인을 향해 “차라리 시설로 가는 게 낫다”는 무책임한 말들은 쌓이고 쌓여 이번 코로나19 참사 앞에서 집단 감염과 죽음으로 돌아왔다. 개인의 삶을 탈락시키고, 인생을 지워버림으로써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사회,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차별과 혐오를 대안처럼 제시하는 우리 사회의 말들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잊은 채 인간에 대한 포기를 종용한 셈이다. 그 속에서 집단 시설로 보내진 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 뉴스 속 숫자가 되었다.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혐오와 외면이 그들의 긴 삶의 역사를 지우고 숫자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도 시설과 요양원에서 사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집단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인간다운 삶에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당장 내 눈앞에서 이들이 사라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죽지 않게 함께 손을 꼭 붙잡고 같이 살 궁리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이가연의 평화 플레이리스트

이랑- 환란의 세대

죽지말라고 만든 노래 같다.



시와-길상사에서

내 안의 청승을 찾아서



지니어스- 너나 나나

그대는 나의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나는 그대의




☮ Writer | 이가연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