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열차의 귀환 / 이선철

2019-03-21


열차의 귀환 / 이선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축제는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지역축제는 지역의 홍보와 마케팅, 네트워킹과 주민통합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축제들은 수십억의 예산이 드는 대규모의 관광축제에서 전문적인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축제 그리고 소규모 마을 단위 농촌축제들까지 그 유형과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들 축제는 대부분 지역의 독특한 역사나 풍습, 특산물 또는 자연경관을 주제로 만들어져 손님을 불러 모으려 애쓰고 있다.


 축제는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스스로 즐기고, 교류와 소통의 계기도 되며, 장기적으로 지역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축제들은 바라보는 관점과 목적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에 있어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모든 축제를 아우르는 공통요소도 있는 법이다. 이른바 집단적 광기의 발산, 공동체 의식의 발현, 잠시나마 갈등과 반목을 치유하고 하나가 되는 통합의 실현, 지역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 소통과 교류의 매개가 되기도 하며 경제적 효과까지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축제가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유희 본능을 집약적으로 표출하는 장치이자, 억압된 감정 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분출구라며, 호모 페스티부스라 하기도 했다. 일상으로부터 탈피하여 다 같이 즐기며 그 안에서 일체감을 느끼고 낯선 이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축제인 것이다. 과거 종교와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허용된 일탈과 해방의 역할을 해 왔던 축제는 이제는 사회적, 문화적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고, 나아가 산업적 측면의 효과까지도 기대되고 있다.


 강원도는 그런 면에서 일 년 연중 축제에 최적화되어 있는 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혜의 자연 생태자원과 동계올림픽 등 각종 메가 이벤트의 개최 경험, 이에 따른 교통과 숙박 인프라 확충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원활하며 수도권에서의 접근성도 좋아지고 있다. 심지어 축제의 비수기라는 한겨울에도 산천어 축제와 눈과 얼음 축제 등 다양한 지역특화 콘텐츠로 축제의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의 볼모지라는 인식이 무색하게 문화예술 축제에서도 그 양과 질에 있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이제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동력이자 지역 발전의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강원도가 공연 축제의 선도적 역할과 함께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던 것은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춘천의 마임 축제나 인형극제, 원주의 따뚜공연장과 다이나믹댄싱카니발, 강릉단오제, 그리고 대관령국제음악제까지 그 훌륭한 역사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원도의 축제 발전과 진화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소외 지역이 있으니 바로 휴전선과 면해있는 강원도 접경지역이 그렇다. 남북대치, 군사도발 등으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의 상황상 예술이나 축제를 접목하는 것은 언감생심 어울리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나마 열리는 문화행사들에 철원 특유의 상징적 공간 자원은 하나의 배경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철원의 휴전선, 노동당사, 민통선 등은 가장 첨예한 분단과 대치의 대표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렇다.


월정리 역 ⓒ피스트레인


 이런 철원에서 최근에 놀라운 변화와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예술의 씨앗이 뿌려지고 싹이 움트며 꽃이 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예술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시도가 있는 데 기인한다. 실제로 몇 년 전 생존하는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 마이클케나가 내한하여 필자가 안내하여 강원도를 돌며 촬영을 할 때 첫 도착지가 철원이었다. 지자체는 명승지와 절경을 소개했지만 정작 케나는 휴전선과 DMZ, 군부대 해골 마크를 응시했다. 이 세계적인 예술가의 눈에는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지역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담아내는 가장 훌륭한 피사체였다. 이후 리얼 DMZ 프로젝트, 양지리 마을 브랜딩과 마을미술프로젝트, 꿈다락토요문화학교와 각종 문화 프로그램들이 이어졌다. 이제 철원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춥고 차가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장 뜨거운 예술 에너지가 분출되는 핫한 지역이 되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모멘텀을 제공한 것이 바로 피스트레인인 것이다. 우연한 계기에 조심스레 실험처럼 시작되었던 피스트레인은 이제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자유로운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그리고 피스트레인은 이제 지역의 새로운 예술 허브이자 철원은 축복받은 플랫폼이 될 것이다. 피스트레인을 재미있게 비유하자면 산골 기차역에 밤새 조용히 도착한 최신형 열차 같다. 이 신비한 기차를 발견한 주민들이 조심스레 다가가 살펴보던 중 문이 활짝 열리고 여기서 내린 사람들은 음악으로 새로운 축제를 만들고 모두 친구가 된다. 옛날 칙칙폭폭 기운찬 기적소리와 함께 철원 산야를 누비던 기차는 이제 날렵한 모습으로 다시 달리게 되었다. 과거 사람을 실어 날랐던 열차가 다시 예술가를 싣고 귀환한 것이다. 다 함께 열차의 귀환을 뜨거운 기립박수로 환영하자.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2018 현장 ⓒ피스트레인



☮ Writer | 이선철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시티)에서 예술행정/경영을 전공한 후, 김덕수패사물놀이 기획실장과 문화벤처기업 (주)폴리미디어 대표이사 및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평창의 폐교활용 문화공간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및 숙명여대와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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